불가리아 사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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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 사회당(BSP)은 1891년 디미타르 블라고예프가 창당한 불가리아 사회민주당을 계승하여 1990년 재창당된 정당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1990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했으나, 총파업으로 사임했다. 이후 야당으로 활동하다가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연립 정부를 구성했으며, 게오르기 파르바노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2009년과 2017년 총선에서는 보수 정당에 밀려 야당으로 전락했고, 2021년 조기 총선 이후 정부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BSP는 민주사회주의, 사회시장경제를 지향하며, 유럽 사회주의자당 회원으로 친유럽적 입장을 취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사회보수적인 경향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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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사회당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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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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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불가리아 사회당 |
로마자 표기 | Bǎlgarska socialističeska partija |
약칭 | BSP |
설립일 | 1990년 4월 3일 |
전신 | 불가리아 공산당 |
본부 | 소피아, 20 Positano Street |
기관지 | Duma |
청년 조직 | 불가리아 사회주의 청년 |
당원 수 | 80,236명 (2020년) |
슬로건 | (합리적인 해결책) |
색상 | 빨강 |
웹사이트 | 불가리아 사회당 공식 웹사이트 |
지도부 | |
당 대표 | 아타나스 자피로프 (직무대행) |
정치 성향 | |
이념 |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사회보수주의 좌익 포퓰리즘 |
정치적 위치 | 중도좌파 |
국내외 관계 | |
국내 연합 | BSP – 연합 좌파 |
유럽 정당 | 유럽 사회당 |
국제 조직 | 진보동맹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유럽 의회 | 사회민주진보동맹 |
의회 | |
불가리아 국민의회 의석 | 19/240석 |
유럽 의회 의석 | 2/17석 |
지방 자치체 의석 | 72/265석 |
2. 연혁
불가리아 사회민주당을 계승하여 1891년 8월 2일 창당된 불가리아 사회당(BSP)은 1903년 불가리아 사회민주 노동자당(협소 사회주의자)로, 이후 불가리아 공산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11]
1989년 동유럽 혁명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불가리아 공산당은 1990년 4월 당명을 불가리아 사회당으로 변경하여 새롭게 출범하였다.
당명 변경 직후 치러진 1990년 불가리아 대국민의회 선거에서는 과거 공산당 시대에 쌓은 조직력을 활용하여 211석을 획득, 과반수를 차지함으로써 동유럽권에서 유일하게 구 공산권 정당으로서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91년 불가리아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민주 세력 연합이 제1당이 되면서 정권을 잃었다. 2001년 불가리아 국민의회 선거 이후로는 불가리아 사회민주당 등 다른 중도좌파 정당들과 함께 "불가리아를 위한 연합"이라는 정당 연합을 구성하여 선거에 임하고 있다.
2. 1. 창당과 초기 활동 (1990-1996)
1989년 혁명으로 인한 정치적 변화 이후, 불가리아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1990년 4월 불가리아 사회당(BSP)으로 재창당되었다.[29]1990년 불가리아 헌법회의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여 정부를 구성했지만, 같은 해 12월 발생한 총파업으로 인해 사임해야 했다.[11] 이후 디미타르 일리예프 포포프(Dimitar Iliev Popov)가 이끄는 무소속 정부가 1991년 불가리아 의회 선거까지 권력을 행사했고, 그 후 당은 야당으로 전락했다.
1995년, BSP 지도자 잔 비데노프가 불가리아 총리를 맡아 새로운 정부 구성에 참여했다. 그러나 1996년 말,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이 발생하여 새로운 사회주의 정부 수립이 좌절되었다. 충격 요법과 민영화 정책으로 인해 불가리아는 초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고, 이는 최근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 및 금융 위기였다.[33]
2. 2. 야당 시기와 재집권 (1997-2009)
1990년 불가리아 헌법회의 선거 이후 불가리아 사회당은 정부를 구성했지만, 같은 해 12월 발생한 총파업으로 인해 사임해야 했다. 디미타르 일리예프 포포프(Dimitar Iliev Popov)가 이끄는 무소속 정부가 1991년 불가리아 의회 선거까지 권력을 행사했고, 그 후 불가리아 사회당은 야당이 되었다.[29] 1995년, 불가리아를 위한 BSP의 전신인 민주좌파 연합의 일원으로, BSP 지도자 장 비데노프(Zhan Videnov)가 불가리아 총리를 맡아 새로운 정부 구성에 참여했다. 그러나 1996년 말 임기가 끝난 후, 도시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이 발생하여 새로운 사회주의 정부 수립은 좌절되었다. 충격 요법과 민영화 정책으로 인해, 다른 여러 탈공산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불가리아는 최근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 및 금융 위기인 초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33]2001년 불가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당 대표 게오르기 파르바노프(Georgi Parvanov)는 결선 투표에서 연합 민주 세력(SDS)의 현직 대통령 후보 페타르 스토야노프(Petar Stoyanov)를 물리치고 불가리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파르바노프는 당 대표직에서 사임했고, 세르게이 스타니셰프(Sergey Stanishev)가 그의 뒤를 이었다. 이는 BSP와 SDS 간의 양당제 붕괴를 의미하는 사건이었다.[33]
1997년과 2001년 두 번의 선거에서 야당으로 지낸 후, BSP가 이끄는 불가리아를 위한 연합은 2005년 불가리아 의회 선거에서 31.0%의 득표율로 승리했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후 총리 겸 BSP 대표 스타니셰프가 이끄는 스타니셰프 정부가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중도주의 성향의 시메온 2세 국민운동과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 운동(DPS)이 참여했다.[33] 2006년 불가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파르바노프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되어, 직접 선거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된 최초의 불가리아 대통령이 되었다. 2007년 불가리아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33] 그러나 광범위한 정치 부패 혐의가 제기되면서 BSP가 이끄는 여당 연합은 수백만 유로의 재정 지원을 잃었다. 또한 내각은 다가오는 세계적인 2007년-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대응하지 못했고, 여러 해 동안 흑자를 기록한 후 예산 적자로 임기를 마감했다.[12]
2009년 불가리아 의회 선거에서 BSP는 새로운 보수주의 정당인 GERB에 패배하여 240석 중 37석(18%)을 획득하는 데 그쳤고, 다시 야당으로 전락했다. GERB는 반공산주의적이고 반터키스탄적인 강령을 내세워 집권했고, 사회학자 야나 초네바(Jana Tsoneva)가 ''자코뱅''에 쓴 글처럼, 이전 BSP 정부를 "가장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정부라고 비난했다. [33]
2. 3. 오레샤르스키 정부와 이후 (2013-현재)
2009년 불가리아 의회 선거에서 불가리아 사회당(BSP)은 보수주의 정당인 GERB에 패배하여 240석 중 37석(18%)을 얻는 데 그치며 야당이 되었다.[33] 2013년 불가리아 의회 선거에서는 30.6%의 득표율로 GERB(26.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BSP와 권리와 자유를 위한 운동(DPS)의 지지로 플라멘 오레샤르스키(Plamen Oresharski)가 총리 후보로 선출되어 오레샤르스키 정부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언론 재벌 델리안 페프스키(Delyan Peevski)의 DANS 수장 임명은 2013년 6월 14일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고,[13] 오레샤르스키 내각 반대 시위는 2014년 7월 정부 사임까지 이어졌다.[33]2017년 불가리아 의회 선거에서 BSP는 의석수가 크게 늘었지만, GERB 역시 의석이 늘어 집권에는 실패했고, 제3 보리스프 정부[33](극우 정당 연합 애국자 포함)에 대한 야당으로 남았다.[30]
BSP는 2020-2021년 불가리아 시위를 지지하며 불신임 투표를 주도했으나 실패했다.[14] 보이코 보리소프(Boyko Borisov) 총리 사임으로 시위는 끝났지만, 2021년 4월 불가리아 의회 선거 결과는 분열적이었다.[15] 2021년 7월 불가리아 의회 선거[16] 이후에도 BSP의 정부 구성 시도는 실패했고,[17] 정치적 위기는 계속되었다.[18]
2016년부터 당 대표였던 코르넬리아 니노바[19]는 당이 2013년 이후 정부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당내 갈등을 겪었다. BSP는 인민이 있다라는 포퓰리즘 정당 지지를 주저했다.[20] 2021년 11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세 번째 조기 총선[21](2021년 불가리아 총선거)[23]이 위기 해결을 위해 실시되었다.[24]
BSP는 페트코프 정부에 PP, ITN, DB와 함께 참여, 사회복지·보건·농업·경제 부처를 맡았고, 니노바는 부총리가 되었다.[26]
2023년 8월, 니노바는 불가리아 가정 폭력 방지법 개정에서 당의 역할을 강조하며 헌법 준수를 주장했다. 개정된 "밀접한 관계" 정의는 남녀를 명시, 60일 이상 지속된 관계에 대한 보호를 확대했다. 임시 의회 회의에서 채택된 이 개정안은 성별 포괄성 논쟁과 보호 기간 비판을 받았다.[76]
3. 이념 및 정책
불가리아 사회당(BSP)은 불가리아 공산당을 계승한 정당으로,[28]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사회주의 정책과 가치를 지지하고 사회시장경제를 지향한다.[29] 포퓰리즘적[29] 성격을 띤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도 묘사된다.[29] 당의 정책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었는데, 비덴노프 시대에는 전통적인 사회주의적 경향을 보였으나, 스타니셰프 시대에는 사회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해졌고, 니노바 시대에는 사회보수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유럽 사회당(PES) 회원 정당으로서, BSP는 대체로 친유럽적 입장을 취한다.[30] 그러나 일부 유럽회의주의적 입장을 보이기도 하며, 러시아 제재 종식을 촉구하기도 했다.[31] 노비니테[32],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등 일부 언론은 BSP의 이러한 성향을 온건한 러시아 친화적인 것으로 평가했다.[33]
코르넬리야 니노바 지도 체제 하에서 BSP는 사회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29] 유럽 연합 정치와 마찬가지로 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열되어 있는데, 니노바와 같은 일부 지도자들은 불가리아 동성결혼에 반대한다.[34][35] 반면, 2009년과 2011년 소피아 시장 후보였던 게오르기 카디예프와 같은 당 지도자들은 2011년 LGBT 자긍심 퍼레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36] 많은 당 지도자들은 동성애 관계를 포함하는 성교육에 반대하며 이스탄불 협약에 반대했고, 내부 의견이 갈린 끝에 반대표를 던졌다. 전 BSP 지도자이자 당시 PES 수장이었던 세르게이 스타니셰프는 이스탄불 협약을 강력히 지지했다.[37] 니노바 체제 하에서 BSP는 더욱 민족주의적인 입장으로 전환했다.[40][41]
4. 역대 지도부
(권한대행)